노인을 위한 디자인은 없다

키오스크 유니버설 디자인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그런 말을 들은적이 있다. ‘편리는 누군가의 불편을 담보로 이뤄지곤 한다.’

생각해보면 맞는 말이다. 우리는 다수의 편리를 위해 소수의 불편함을 쉽게 생략하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다수와 소수와의 격차는 더욱 커지며 소수는 심각한 소외감을 느끼게 된다. 특히 이 문제는 오늘날 편리함의 상징인 정보기술영역에서 많이 일어나고 있다.

오늘은 정보 기술 중에서도 무인포스, 키오스크에 관한 격차에 관해 이야기해보겠다.


키오스크의 편리함

혹시 여러분들은 키오스크를 이용해 본 적이 있는가?

아마 이 글을 보는 사람들 중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용해 본 적이 있을 것이다. 공항, 식당, 기차역 등 키오스크는 우리 일상 생활 속에 이미 녹아들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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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리아의 키오스크.


키오스크는 최근 요식업계에서 많이 활용되고 있다. 많은 식당들이 키오스크를 도입 중이며 그 중의 대표주자는 패스트 푸드 업계이다. 롯데리아는 2014년 4월부터 키오스크를 도입했으며 현재 1300여개 매장 중 460개 매장에서 운영 중이다. 맥도날드, 버거킹 또한 현재 키오스크를 운영 중이다.

그렇다면 왜 업체들은 하나둘씩 키오스크를 도입하고 있는 걸까?

키오스크는 많은 장점을 가지고 있는데 우선 가장 큰 장점은 도입 매장의 매출 확대이다.

주문할 수 있는 채널이 늘어나니 대기 줄이 짧아지고 고객의 주문율이 높아져 매출이 올라간다. 고객 또한 기다리는 시간을 줄일 수 있으니 좋다. 그 외에도 사람이 하는 일을 기계가 대신하니 인건비를 줄일 수 있고 매장 운영비를 줄이는 효과도 있다.

그런데 과연 이렇게 키오스크는 편리하기만 한 것일까? 이 편리는 누군가의 불편함을 담보로 하고 있진 않을까?

현재 우리나라의 키오스크(특히 식당 키오스크)는 다수를 위한 편리함만 제공할 뿐 소수를 고려하진 않는다.

현재 노인들이나 장애인 같은 취약계층들은 키오스크를 제대로 이용할 수 없다.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가 그들을 위해 디자인 되어있지 않기 때문이다.


키오스크, 불편함 덩어리

그렇다면 무엇이 그들의 불편함을 야기한걸까?

대부분의 장애인들이 불편함을 호소하는 것은 키오스크의 하드웨어 디자인 때문이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키오스크의 평균적인 높이는 대략 1.8m정도로 디자인 되어있다.

아마 이 정도면 성인이 무리없이 사용할 수 있는 높이라고 생각해 디자인하지 않았나 싶다.

그런데 과연 장애인들도 이 높이에서 무리없이 사용할 수 있을까?

스브스뉴스가 취재한 내용을 보니 일반적으로 휠체어를 탄 장애인이 키오스크를 사용하는 것은 쉽지않아 보인다.

팔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장애인도 쉽지 않다면 더 장애의 정도가 심한 사람들은 아마 이용 시도조차 하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시각 장애인 또한 키오스크를 쓰는데 문제가 많다.

(참고 : “손 안닿고, 안보여요”…장애인 외면하는 무인결제기)

기본적으로 대부분의 키오스크가 제작 시 점자나 음성안내를 갖추지 않았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그러고보니 돌아다니면서 점자를 갖고 있는 키오스크는 단 한번도 본적이 없는 것 같다.)

반면 노인들은 키오스크의 소프트웨어 특성 때문에 불편함을 호소한다.

우리가 식당에서 보는 대부분의 키오스크들은 약 8~9번의 단계를 거친다.

아마 프로세스는 이렇게 진행 될 것이다.

1.키오스크 앞

2.음식 선택

3.옵션 선택(여기서 단계가 더 많아질 순 있다.)

4.주문정보확인

5.결제

6.멤버십 적립

7.적립내용 확인

8.영수증 출력 + 대기번호

9.마무리

젊은 사람들이야 디지털 화면에 익숙하기 때문에 저 정도의 단계는 무리없이 소화하지만 노인들에게는 발을 동동 구르게 만들 횟수들이다. 특히 초반에 실수라도 하면 터치 횟수는 배로 늘어나서 어려움이 더욱 가중된다.

판단력과 학습능력이 급격히 떨어지는 노인들에게 키오스크는 높은 벽처럼 느껴진다.


모두를 위한 디자인

사실 대부분의 키오스크가 가지고 있는 인터페이스는 디지털에 익숙한 세대들이 더 편하게, 더 쉽게 사용하라고 만든 경우가 많다. 인터넷에 올라온 키오스크 UX 설계 사례를 보아도 청년, 직장인 등 미래 소비세대들을 타겟으로 해 설계되어있는 것이 대부분이다.

그것이 잘못 되었다는 것이 아니다. 모든 UX 디자인은 정해진 타겟 유저가 있으며 기본적으로는 타겟 유저들의 유용성과 사용성, 감성을 우선적으로 고려한다.

문제는 대부분의 타겟 유저들이 젊은 비장애인 계층이라는 것이다. 취약계층을 대상으로 한 서비스가 아닌 경우 사실 처음부터 타겟유저가 취약계층이 되는 경우는 잘 없다.

그 과정에서 노인, 장애인 같은 소외계층과 비소외계층의 IT 소외격차는 더욱 커지게 된다.

사실 이런 격차를 고려하여 디자인을 하는 것은 쉽지 않다. 연령이나 범위가 넓어질 수록 고려해야할 것이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런 격차를 고려하는 디자인, 즉 유니버설 디자인은 어렵다.

참고 : 유니버설 디자인이란?


미국의 키오스크 디자인

외국은 유니버설 디자인을 위해 가이드라인을 제정하는 경우가 많은데 키오스크 또한 가이드라인이 있는 경우가 많다.

미국 같은 경우는 키오스크의 높이까지 가이드라인에 기술해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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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인치는 약 1.2m이다.


이런 가이드라인이 있다면 키오스크를 디자인 할 때 한결 수월할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나라도 이런 키오스크 가이드라인이 있을까?

찾아보니 있다! 다만 아직 법제화는 안 된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의 경우 충북대 김석일 교수님께서 공공 단말기 접근성 가이드라인이라는 장애인 접근성 가이드라인 표준을 만드셨다.(짝짝짝!)

앞으로 이 가이드라인으로 키오스크를 만든다면 누구나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지않을까?(아직 노인을 위한 키오스크 UX 디자인 사례는 보지 못한 것 같다. 나중에 내가 한번 만들어보고 싶긴하다.)